우리나라에서는 5번째 큰 섬이며 한강 하구에 있는 섬.
원래는 군청이 있는 본섬과 마니산이 있는 섬 등 3개의 큰 섬을 간석지 복토로 인하여 하나가된 섬이며, 주변에 크고 작은 15개의 부속 섬이 있다.
강화도는 고려 시대에 전란으로 인하여 임시 왕도로 되기도 하였으며, 조선 시대 말기에는 외세에 대항하기 위한 국토 방위 시설이 여러 곳에 설치되어 병인양요·신미양요, 병자 수호조약 등을 겪은 근대 개항 100년의 피와 눈물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는 곳이다.
최고봉인 마니산(摩尼山 : 469m)을 비롯하여, 400m 내외의 산이 많으며 평지가 잘 발달되어 있다.
남쪽 강화만으로는 넓은 간석지가 펼쳐져 있고 1970년에 강화대교(694m)가 건설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어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주요 호국 유적지로는 갑곶돈대·외성·광성돈대·광성제단·초지진·덕진진 등이 있다.
화도면 동막리 유적과 하점면 삼거리 유적 등에서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가 다량 출퇴된 것으로 보아 강화도에는 신석기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에서는 특히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인돌이다.
100여 기 이상의 고인돌이 강화도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 혼재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고인돌의 대부분은 고려산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수의 고인돌 때문에 마한의 소국들 중 하나가 강화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000년 11월 29일에는 제2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강화의 고인돌이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고려 시대부터 강화도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곳의 목판인쇄소에서 팔만대장경 조판이 이뤄지기도 했다.
한편, 강화도는 유배지로도 유명했는데, 연산군, 광해군 등이 이곳으로 유배를 왔었다.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하였었다. 이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남한산성에, 봉림대군 등의 왕족들은 강화도로 피신했는데, 청에 의해 강화도가 함락되자 인조도 항복하였다. 이후 남양에 있던 경기수영이 강화도로 옮겨졌다.
효종 때에는 북벌 정책을 계획하면서 해안에 월곶진, 제물진, 광성보 등의 진과 보를 설치하였고, 성곽을 수리했다.
숙종은 해안 전역의 돌출부에 53개의 돈대를 설치하여 강화도의 전 지역을 요새화 하였고, 지금도 이렇게 만든 조선시대의 군사시설이 많이 남아 있다.
오늘의 강화도는 강 건너 북한마을을 마주보고 있는 분단된 조국의 생생한 안보의 섬 역사의 섬 그리고 휴식과 관광의 섬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강한신문 스포츠성남 조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