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거대한 형상을 지닌 대상이 아닌 마음속 작은 상상의 시작에서 이루어진다. 12월 방태산, 소백산 산행은 눈과 바람의 직격탄을 맞으며 작은 부상을 동반한 산행이었다. 소백산 산행 다음날(22일)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렸다. 눈이 성인허리높이 까지 쌓였다. 보름 후 그 강원도 설악산을 오르는 것 그것은 두려움이다. 가파른 경사면에 쌓인 눈이 얼었다면? 소백산 비로봉의 매서운 칼바람을 알기에 대청봉에 혹독한 바람이 분다면? 마음속 작은 연약함의 걱정은 두려움으로 쌓여갔다.
두려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세미한 충동과 소리는 하루를 기다리게 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인수 바위암벽을 오르기 전날 언재나 잠을 설친다. 몇 피치를 오르고 더 이상 오를 수 도, 움직일 수 도, 추락할 수 도 없었던 때를 생각해본다. 극심한 두려움이다. 아침이 되면 그 두려움을 품고 바우 앞에 다가간다. 두려움 속에 일어나는 세미한 충동과 소리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품고 산을 마주하며 오르면 오를수록 두려움 보다 그 속에 세미한 충동과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오를수록 자신의 존재를 잊게 된다. 오를수록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산은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제 산은 오르려 해도 오를 수 없는 산이 되는 것이다.
산사진1
중청에 오를수록 무너지는 걱정의 태산
한계령휴게소에서 시작되는 서부능선산행은 급경사의 30여 계단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발걸음이 무겁다. 계단을 오를수록 걱정은 현실이 되어있었다. 눈이 무릎 가까이 쌓이고 눌려 길이 되었다. 미끄러지는 눈길을 밟고 오르는 것 쉬운 일은 아니다.
겨울산행에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다. 쌓인 눈길은 그럭저럭 나아 갈 수가 있다. 길이 부분적으로 얼었을 때 아이젠이 필요했으나 발목과 무릎에 충격을 줄 수가 있기에 반드시 착용해야한다고는 볼 수 없었다. 스틱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아이젠이 없어도 겨울산행을 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겨울산행과 스틱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눈 덮인 겨울 산의 경사진 오르막과 내리막길은 걱정보다 앞선 두려움이었다.
설악루에서 서부능선 삼거리까지의 길은 걱정했던 현실과 마주하며 부딪히고 인정하며 걸어야하는 고행의 길이다. 설악루를 지나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자 악산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걱정할 여유도 없이 균형을 잡고 걷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 귀때기청봉을 뒤로하고 서부능선 삼거리를 지나 끝청을 향할 때 쯤 걱정했던 현실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끝청에서 중청의 오름길은 앞선 산사람들의 흔적만을 밟고 가야하는 자제의 길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중청으로의 길은 좁아졌다. 한 폭도 않되 보이는 길에 찍힌 발자국만을 밟고 올라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비경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쉽지 않은 일이다. 3시간 을 넘게 걸으며 익숙해진 길이다. 한치 옆에 소복히 쌓인 눈을 밟는다는 것 이제 일이 아닐 수 있다.
중청에 다다를수록 설악산의 비경에 유혹되어 한 폭의 흔적에서 벗어나 무릎까지 빠지며 급하게 허우적거리며 다시 선회한 흔적들이 여러 곳 에 남아있었다.
끝청에서 대청(봉), 사방의 비경을 보여주나 보여지는 작은 그릇
12시가 넘어서야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했다. 동해바다와 속초가 한눈에 보였다. 우려했던 바람도 불지 않고 하늘은 맑았다.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12월 21일 소백산 대피소 바로 직전까지 바람이 불지 않았다. 능선에 올라 대피소로 접어들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정상에 쌓인 눈이 칼바람을 타고 다시 하늘로 솟구치며 떨어져 그대로 산사람들을 휘감았다. 눈에 보여 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대청봉에 서니 1시가 되었다. 바람 한 점 없던 중천과는 달리 대청에는 만만치 않은 바람이 불었다. 그것도 대청봉비석 앞 3 -4m 안팎에서만 느껴졌다. 대청봉에 올라서야 사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또한 산이 허락한 만큼의 비경만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을 본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끝청에서 중청, 대청의 길을 걸어 온 산사람들에게 산은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지만 봉우리에선 난 끊임없는 한계성을 깨기위해 산위에서 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산이 사방의 비경을 보여주었지만 그 비경을 마음속에 담기에는 새기기에는 나의 그릇이 작아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