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언덕 위에 하얀 집을 그리며 시골 전원생활을 꿈꿔 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백 년 살고 싶어” 어느 가수의 노랫말 속의 가사다. 이 노래 가사처럼 시골 전원생활은 선남선녀들의 로망처럼 되어있다. 빌딩 속 질곡 된 도시생활을 벗어나 자연 친화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공기 맑고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 속의 전원생활을 한번 쯤은 생각하며 살아간다.
현실로 다가와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시골은 눈을 뜨자마자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창문 커튼을 열게 된다. 밤하늘은 마음에 보석같이 밝고 총명하다. 모든 것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함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자연의 섭리 속에 펼쳐지는 사계절의 변화는 축복을 받는 느낌이다.
봄철에는 계곡의 잔설이 녹아내리고 산에는 울긋불긋 꽃들이, 들녘에는 봄나물이 향기로움을 더해준다. 여름에는 덥지만 내려 쬐는 땡볕 속에 자연이 시원함을 주고, 가을에는 그림과 같은 단풍으로 산야를 물들인다. 겨울에는 하얀 눈꽃이 수 놓으며 우리의 마음에 이불을 덮는다. 자연이 주는 우리의 삶은 신비롭고 풍요롭기만 하다.
전원생활은 기대감에 부풀게 하고 마음의 여유로움을 준다. 자연은 우리에게 주는 만큼 많은 것을 요구한다. 식물이나 채소들은 주인 발소리를 들으며 성장한다고 한다. 그만큼 부지런하고 애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기대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 시간의 여유를 갖고 편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이 시작되지만 전원생활을 하다보면 원하는 대로 되지않아 어려움에 부닥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때부터 전원생활의 서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즈음 시골 전원생활이 단순한 로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고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서 임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고 민원이 생겨 난감하게 만드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리고 자연 생태학적인 현상들보다 배타적인 원주민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대학교 강의를 접고 시골 한구석에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해서 본집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처음 시골 생활은 모든 것이 새롭고 큰 기대감 속에 시작했다. 맑은 공기도 마시며 먹을거리도 심고, 풀도 뽑으며 기름진 밥도 지어 먹었다. 새싹들이 자라면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제공해 주었다. 시원한 정자에 앉아 상추로 쌈도 싸 먹고 풋고추에 고추장을 찍어 먹으며 더운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25년 전에 임야를 원주민으로부터 구매했는데, 그분이 별세하고 난 후 아들이 갑자기 사용하고 있던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알고 보니 사용하던 길이 사도로서 나의 땅은 맹지였던 것이다. 매입할 때 자세히 알아보고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나의 실수였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관공서를 다니면서 내 땅에다 길을 내는데도 제도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마음고생을 한끝에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해결할 수가 있었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면만 생각했다간 도시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주위에서 적지 않게 발생하곤 한다.
자연을 즐기기는 쉬우나 자연을 관리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즐기는 경우만 생각하지 관리하는 것은 잊고 접근을 한다. 그러한 것들이 시골 전원생활을 어렵게 하고 로망은 산산이 부서진 채 결국은 시골 생활을 접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기왕 시작하는 전원생활이라면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즐겁고 행복한 생활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원하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